365일 나체 감금
안대에 눈이 가려진 채로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도착한 남성이 있습니다. 안대를 벗자 낯선 방에 한 방송국 PD는 모든 옷을 다 벗게 하고 압수하고, 그에게 미션을 줍니다. 이 방안에서 라디오나 잡지의 경품으로 당첨된 물건의 총합이 100만 엔, 우리나라 돈으로 약 1100만 원 이상이 되면 미션이 끝난다고 했습니다.
미션을 완수할 때까지 그는 밖에 나갈 수도 없고, 먹는 문제 또한 경품으로 당첨된 것으로만 해결해야 했습니다. 남자는 언제 끝날지 기간도 정해지지 않은 채 감금됐습니다.
하마츠 도모아키(별명: 나스비)라는 젊은 개그맨은 1998년 1월1일 니혼 TV 신년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오디션을 본다는 명목으로 신인 개그맨들을 모집해 제비뽑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신입 개그맨들은 뜨기 위해 어떤 미션이든 수행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나스비는 ‘경품으로 생활하기’에 뽑혔습니다.
이 작은방에서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 주어진 것은 화장실, 싱크대, 가스레인지, 라디오, 잡지, 엽서가 전부였습니다.
나스비는 나체가 된 채로 수많은 엽서를 쓰며 미션을 수행했습니다. 2주가 지나 첫 번째 경품에 당첨되었고 젤리를 받았습니다. 며칠 후 5kg 쌀이 당첨되었습니다. 쌀을 요리할 도구가 없자, 몇 번의 실험 끝에 받았던 젤리 통으로 밥을 지어 먹게 됩니다. 이외에도 사케, 과자, 딸기, 삶은 콩 등 많은 상품에 당첨되었습니다.
쌀이 정말 얻어먹고 싶어 쌀 응모를 했던 나스비에게 온 것은 개 사료뿐이었습니다.
첫 번째로 왔던 개사료 맛은 별로였지만, 두 번째로 온 개사료는 맛이 생각보다 괜찮았는지 한동안 개사료로 연명하게 됩니다.
물개 이름 짓기 공모전에서 수상하여 물개 인형까지 받았으며, 인형 이름을 본인 별명에서 착안한 ‘비나스’로 짓습니다. 3개월 동안 대화할 사람이 없어서 외로웠던 나스비는 종종 비나스에게 말을 걸게 됩니다.
나스비는 매달 6천 통 이상의 엽서를 보냈으며 하루하루 궁핍하게 경품으로만 마족하며 생활해야 했습니다.
제작진은 나스비의 방송을 24시간 인터넷 스트리밍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의 중요 부위는 조이스틱을 이용한 편집으로 제작진이 실시간으로 24시간 동안 가려주었습니다.
거의 도촬에 가까운 방식을 선택한 이유는, 당시 나스비의 방송은 1700만 명의 일본 사람들이 시청할 만큼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335일 만에 목표를 달성했고, 감금에서 해제됩니다.
그리고 제작진은 1년 동안 고생한 나스비를 위해 한국 여행을 보내주게 됩니다. 한국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쇼핑한 김치독을 들고 도쿄에 돌아갑니다.
그러나 또 다른 방에 도착한 나스비에게, 다시 고통의 미션이 주어집니다.
<한국에서 경품 응모만으로 도쿄행 비행기 티켓값 벌기>라는 명목으로, 한국어를 모르는 나스비에게 주어진 것은 일한 사전, 한일 사전, 엽서, 잡지가 주어졌으며 한국어를 할 수 없었음에도 나스비는 사전을 뒤져가며 경품 응모엽서를 써야 했습니다. 목표는 도쿄행 이코노미 티켓 46900엔 (한화 약: 51만 원)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미션은 3개월 만에 완수했지만, 제작진은 나스비가 모른다는 이유로 달성해야 하는 금액을 계속 늘려갔습니다. 생각보다 목표치를 빨리 달성했다고 느낀 PD는 나스비의 목표치를 비즈니스 클래스로 업그레이드합니다.
한국->파리->도쿄로 경유해서 가는 파리 여행 코스 티켓 (94만 4440엔, 한화 : 약 1000만 원)을 목표치로 또다시 바꾸려고 했으나, 이를 나스비가 눈치채는 바람에 실패했습니다.
다시 안대에 가려진 채 진짜 도쿄로 돌아가게 됩니다.
1년 3개월간에 긴 나체 생활로 인해 옷을 입으면 불편함을 느낀 나스비는 체념한듯 바로 옷을 벗어버립니다.
하지만 알고보니 이 방은 방송국 세트장 위에 지어진 간이 세트장이었고, 그의 성공을 축하하기 위해 1000여 명의 방청객들이 모여있었습니다. 카운트다운이 끝나면 그가 있는 간이 세트의 벽이 사방으로 넘어져서 그의 성공을 축하하는 몰래카메라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나스비는 나체의 몸으로 1000여 명의 방청객들 앞에서 축하를 받으며 1년 3개월의 쇼를 마치게 됩니다. 이때까지 나스비는 사회자가 성공했다고 알려주기 전까지 본인의 성공여부를 알지 못했습니다.
방송 이후, 나스비의 행보
그가 15개월의 방송 기간 동안 작성했던 일기는 책으로 판매되어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였으며, 프로그램 자체의 기행적인 형식 탓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나스비는 한동안 많은 인기를 누렸으나 금방 시들어 갔으며 그는 방송 후 옷을 입게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옷을 입게 되면 한동안 가려움증과 많은 더위를 느꼈고, 홀로 단절된 기간 탓에 6개월동안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출연이 끝난 후 심각한 스트레스를 겪은 나스비는 자살기도까지 하였으나, 방송 출연 기간 동안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스비를 배려해 휴학 처리를 해준 교수 등을 비롯한 주변에 많은 응원을 보내준 사람들 덕에 힘을 얻고, 가면라이더 등의 방송 출연을 포함해 본인의 고향인 후쿠시마에서 조용히 방송인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2016년에는 후쿠시마 지역 원전 사고의 피해자들을 위한 모금운동을 펼치기 위해 3번의 실패 끝에 에베레스트산 등정을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나스비의 쇼가 끝난 후, 프로그램은 기행적인 포맷을 계속 선보이다가 가학적인 예능에 대한 반대 여론이 전국적으로 들끓자 2002년 일본 정부의 압박과 강화된 방송 규정에 의해 폐지되었습니다.
후에 나스비가 밝힌 바에 따르면 이 쇼를 기획했던 PD는 본인에게 사과했으며, 그는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에 후회하고 있지만 사과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전했습니다.
[3줄 요약]
1. 1998년 일본에서 ‘경품 응모만으로 생활하기’라는 예능을 진행함.
2. 나스비는 나체로 방에 감금돼 경품 이벤트로 당첨된 상품으로만 생활해야 했음.
3. 나스비 이후에도 프로그램은 가학적인 포맷을 진행했지만, 2002년 폐지